집에서 디카페인 커피 맛있게 내리기 (가공 방식에 따른 맛의 차이와 추출 팁)
저녁 식사 후, 은은한 조명 아래서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고 싶지만 밤잠을 설칠까 봐 꾹 참았던 적 있으신가요? 저 역시 늦은 오후에 커피를 마시면 심장이 두근거려 항상 집에 디카페인 원두를 구비해 둡니다.
하지만 홈 카페 입문 시절, 처음 디카페인 원두를 사서 내렸을 때는 실망이 아주 컸습니다. 평소처럼 정성껏 내렸는데도 향은 부족하고 군고구마 껍질 탄 맛이나 보리차같이 밍밍한 맛이 났기 때문입니다. 비싼 돈을 주고 산 원두가 문제였을까요? 아닙니다. 문제는 디카페인 원두의 특징을 모른 채 '일반 원두와 똑같은 방식'으로 추출했던 저의 레시피에 있었습니다. 오늘은 디카페인 커피의 맛이 왜 다른지 가공 방식의 원리를 이해하고, 집에서도 일반 커피 못지않게 훌륭한 맛을 끌어내는 디카페인 맞춤형 추출 비법을 알려드립니다.
1. 디카페인 커피는 왜 맛이 밋밋할까? (가공 방식의 비밀)
디카페인은 커피나무의 품종 자체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일반 생두(Green Bean) 상태에서 인위적인 공정을 거쳐 '카페인 성분만' 99% 이상 빼낸 것입니다. 물을 이용하는 스위스 워터/마운틴 워터 프로세스, 이산화탄소를 이용하는 공법, 사탕수수 발효 추출물을 이용하는 슈가케인(EA) 프로세스 등이 대표적입니다.
이 과정에서 생두를 물이나 용매에 장시간 불리고 씻어내고 건조하게 됩니다. 안타깝게도 이 공정을 거치면서 카페인뿐만 아니라 커피 본연의 화사한 향미(수용성 성분) 일부도 물에 녹아 함께 빠져나가게 됩니다. 또한 콩의 내부 조직이 스펀지처럼 헐거워지고 약해지는 구조적인 변화를 겪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디카페인을 마실 때 화사한 과일 향보다는 약간 밋밋하고 구수한 맛, 일명 '군고구마 향'을 주로 느끼게 되는 근본적인 이유입니다.
2. 오해 금물: 까맣고 기름져도 강배전이 아닙니다
디카페인 원두를 처음 구매하고 포장지를 열면 깜짝 놀라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어? 나는 분명 산미가 약간 있는 미디엄 로스트를 샀는데, 왜 이렇게 숯처럼 새까맣고 표면에 기름(오일)이 번들거리지?"라며 로스팅이 잘못된 것이 아닌지 의심하기도 합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디카페인 공정을 거친 생두는 조직이 이미 매우 연해진 상태입니다. 그래서 로스팅 기계에 들어가 열을 받으면 일반 콩보다 훨씬 빠르게 겉면의 색이 진해지고 오일이 밖으로 배어 나옵니다. 겉보기에는 아주 새까만 강배전(다크 로스트) 원두 같지만, 실제로는 속까지 타지 않은 부드러운 미디엄 로스트 상태일 확률이 높습니다. 따라서 눈에 보이는 진한 색깔만 믿고 '너무 볶아져서 쓴맛이 나겠지'라고 지레짐작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3. 디카페인, 일반 원두처럼 내리면 실패합니다 (맞춤 추출 팁)
조직이 연해진 디카페인 원두를 일반 원두 내리듯 똑같이 내리면 십중팔구 쓴맛과 떫은 잡미가 과다하게 쏟아져 나옵니다. 맛있는 디카페인을 완성하기 위해 반드시 바꿔야 할 3가지 변수 조절 팁을 알려드립니다.
물 온도는 무조건 낮추세요 (85~88도) 가장 중요한 팁입니다. 조직이 헐거운 디카페인 원두는 물에 닿자마자 커피 성분이 아주 '빠르고 쉽게' 녹아 나옵니다. 여기에 팔팔 끓는 뜨거운 물을 부으면 우리가 원치 않는 불쾌한 쓴맛까지 순식간에 우러납니다. 평소보다 한 김 더 식힌 85도 전후의 미지근한 물로 추출해야 달콤하고 고소한 핵심 단맛만 부드럽게 뽑아낼 수 있습니다.
분쇄도는 평소보다 한 칸 '굵게' 원두가 연하기 때문에 그라인더에 갈릴 때 미세한 가루(미분)가 훨씬 많이 발생합니다. 이 가루들이 종이 필터의 구멍을 흙탕물처럼 막아버려 물이 안 빠지게 만들고, 추출 시간이 늘어져 커피가 떫어집니다. 일반 원두보다 조금 더 굵은 소금 크기에 가깝게 갈아주는 것이 좋습니다.
짧고 굵게! 추출은 2분 30초 이내에 끝내기 디카페인 원두는 물을 오래 머금고 있을수록 특유의 텁텁한 종이 맛이나 나무뿌리 같은 맛이 우러나오기 쉽습니다. 초반에 물을 부어 충분히 뜸을 들인 후, 물줄기를 시원하고 굵게 부어서 원하는 양을 빠르게 뽑아내는 '단기 결전'이 필요합니다. 목표한 물양을 다 부었다면 평소보다 조금 이른 2분 30초 부근에서 과감히 드리퍼를 치워 깔끔함을 살려주세요.
4. 디카페인 원두 추천: '슈가케인 프로세스'를 찾아보세요
최근에는 디카페인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해 일반 원두와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훌륭한 향미를 자랑하는 원두들이 많습니다. 특히 콜롬비아산 원두에 주로 적용되는 '슈가케인(EA) 프로세스' 디카페인은 사탕수수 특유의 달콤함이 더해져 열대 과일의 단맛과 화사함이 아주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밋밋한 맛이 지겹다면 슈가케인 방식으로 가공된 원두를 구매해 보시는 것을 강력히 추천합니다.
핵심 요약
디카페인 원두는 생두에서 카페인을 빼내는 공정 중 조직이 연해지고 수용성 향미가 일부 소실되어 구수한 맛이 도드라집니다.
열에 약해 겉면이 까맣고 기름져 보일 수 있지만, 무조건 강하게 로스팅된 쓴 원두는 아니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디카페인을 추출할 때는 과다 추출을 막기 위해 일반 원두보다 '낮은 물 온도(85~88도)', '굵은 분쇄도', '짧은 추출 시간' 3가지를 반드시 기억하세요.
다음 편 예고
어느 날 큰맘 먹고 산 비싼 원두가 내 입맛에 너무 맞지 않아 찬장에 방치되어 있지는 않으신가요? 다음 12편에서는 실패한 원두, 맛없는 원두를 버리지 않고 끝까지 맛있게 마실 수 있는 '원두 심폐소생술(라떼, 콜드브루 활용법)'에 대해 다루어 보겠습니다.
독자님을 위한 질문
평소 어떤 상황에서 디카페인 커피를 가장 자주 찾으시나요? 혹은 최근에 마셔본 디카페인 원두 중 기억에 남을 만큼 맛있었던 브랜드가 있다면 댓글로 추천해 주세요!
댓글
댓글 쓰기